아름다운 이야기
조선말기 서예가며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김정희(金正喜)의 세한도(歲寒圖)를 보면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栢之後凋) 라 발문이 써 있는데
내용은 추운 겨울이 되어야 잣나무와 소나무에 푸르름을 알 수 있다 듯이 편한 세상에서 지낼 때보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지조를
잃지 않은 이의 모습을 소나무와 잣나무로 비유한 내용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주님의 사랑의 행실을 본받아 신앙생활을 함께하던 형제가 어려움에 처한 모습을 보았을 때 사랑의 믿음이 변치 않아야 함을 느끼게 합니다.
세상은 아직도 아름답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많이 힘들고 지칠 때는 세상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살기가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나 이웃을 통하여 따듯함을 느꼈을 때는 세상은 아직도 아름답다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저에게는 오랫동안 그림작업을 함께하였던 휠체어그림쟁이 후배 L이 있습니다. 이 그림쟁이 후배L은 제대 후 다니던 직장에서 어이없는 사고로 휠체어장애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후로 예전 중.고등학교때 미술부였던 기억을 떠올려 붓을 잡고 그림을 시작하였습니다. 꽤나 소질도 보였고 장애인미술대전과 일반미술대전에서도 상을 받는 등 뛰어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장애인 생활현실은 휠체어장애인이 편안히 그림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당장 생계를 위하여 좋아하는 그림도 잠시 접어야했고 취업을 위하여 여러 군데를 동분서주하더니만 결국은 열악한 생산직이라는 어려운 직업을 얻어 공장에서 전자부품조립을 시작하였습니다.
생산라인에 맞추고 또 윗분들 눈치를 보느라 잘 쉬지 못한 작업환경 때문에 척수장애인들에게 늘 약점인 엉덩이와 발목 등에 작은 욕창이 생기곤 하여 또 오랜 기간 욕창치료에 고생을 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마냥 쉴 수는 없어서 몸이 회복되면 다시 생산현장에서 생계를 위한 일을 또다시 시작하곤 했습니다. 회사가 있는 지방에서 서울로 가끔 올라오는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그림사랑화실을 방문하여 맑은 얼굴로 옛정을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곤 회사생활 중 틈틈이 그린 그림이라고 그림 몇 점씩을 꼭 두고 가 그 동안 계속 그림사랑정기전을 함께 하곤 하였습니다. 우리는 화실에서 만나면 늘 나누는 대화주제가 건강과 생활 그리고 그림 작업에 대한 그리움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올봄쯤 화실을 방문하였는데 많이 불편해 하길래 조심스럽게 건강을 물어보았더니 “요즘 늘 달고 다니던 욕창이 많이 안 좋아 걱정이 많습니다”라고 이야기 하더군요. 저야 특별히 도움을 줄 수 없고 "늘 건강조심하고 생활해야지" 그 정도 공허한 이야기밖에는 해줄 수 없었습니다.
여름이 끝날 무렵 그림쟁이 후배 L은 욕창이 심하여져서 세브란스재활병원에 입원한다고 통보를 해와 주일저녁에 아내가 몇 년째 다니는 재활병원 환우를 위한 찬양집회에 함께 참석하고 문병 차 병실을 찾아갔다가 L에게 너무나 우울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본인이 그동안 생각하기에는 욕창이 생겼다 아물었다 하는 상태가 반복되었다고 했는데 병원 의사분이 욕창 딱지 부분을 뜯고 메스로 그어보니 욕창부위가 이미 너무나 많이 커져서 뼈까지 상해져 있는 상태였다고 진단을 내렸다고 합니다. 몇 군데로 번진 욕창 중에서 성형외과 수술이 가능한 것은 처리를 하였지만 골반 뼈까지 상한 부분은 다리를 절단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다는 진단을 받고 많이 힘들어하는 모습이 가슴 아팠습니다. 욕창으로 많이 힘들어지자 회사를 사직하고 시골집에 내려가 몸을 돌보는 중이였는데 시골에 부모님들은 농사를 짓는 분들이고 척수장애인 간병에 대하여 잘 모르시기 때문에 이 환부가 많이 방치되었던 것 같습니다. 가난과 어려운 환경을 많이 원망하는 그 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이 그림쟁이 후배를 어떻게 도와줄까 생각과 기도 중에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속담같이 어려움과 기쁨을 같이 한 그림식구들 모임인 그림사랑 회원들에게 상의를 한 결과 후배 L를 돕기 위한 기금마련전시회를 가을에 늘 행해지는 12번째 또 하나의 밝은 세상 전 한 부분에 열어보자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L를 돕기 위한 기금 마련 전 계획이 세워지자 그림사랑식구 5명과 늘 함께하시는 정두옥선생님도 그림으로 찬조하여주시고, 양천미술협회 회장이신 고성종선생님에게도 말씀을 드렸더니 본인의 좋으신 도자기작품과 동료 두 분이 도자기로서 후원을 해주셨습니다. 전시회기간에 세상은 아직도 아름답다는 느낌과 많은 사랑을 느꼈습니다. 그림쟁이 L의 사연을 들은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고 도와주셨습니다. 이번 일에 많이 사랑을 베풀어주신 김사라집사님, 박천애집사님, 귀한그림을 기꺼이 기증한 그림사랑식구들과 정두옥선생님, 특히 다사랑교회 구제부, 조금씩 찬조해준 휠체어형제와 사랑의 교회자매님들, 그림을 구입하여주셔서 사랑을 베풀어주신 분들, 또한 L의 사연을 가슴 아프게 여겨 가족들이 모두 모였을 때 L의 어려운 사정이야기를 하여 친정어머니와 딸까지 후원금을 보내주시도록 한 이수민 선생님, 이 모든 분들을 통하여 다시 한번 사랑이 어려움을 덮고 이긴다는 것을 알게 하였습니다.
비록 모아진 금액이 치료비에 아득히 모자라는 액수지만 관심을 가져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함을 전합니다.
성경 요한일서에는 주 안에서 늘 사랑하라는 말들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4장 20절 뒷부분의 말씀이 가슴에 떠오릅니다. "보이는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 그림사랑 화실에서 탁용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