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으로 그린 그림

"남편은 그다지 크지도 않은 이 그림 하나를 완성하는 데도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지 몰라요. 손으로 그리는 사람 들이라면 구상한대로 붓을 움직이면 되겠지만 남편은 붓을 손목에 묶어놓고 손목으로 그림을 그려야 하거든요. 그러니 마음 먹은대로 그리기도 힘들고 속도도 아주 더디죠. 자기 딴은 열심히 그린다고 그렸지만 전도사님 마음에 드실지 모르 겠어요." 그녀는 그림을 내앞으로 내밀면서 겸연쩍게 웃었다. 입가에 예쁜 볼우물이 패이면서 홍조를 띠고 있는 그 얼굴 어디에서 도, 사지 마비 장애인인 남편을 9년이나 간병해 온 억척스러 운 여인의 느낌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냥 남편 덕에 아무 고 생 않고 편하게 살아온 그런 여인 같았다. 신앙심이 얼마나 깊었으면 그 많은 아픔들 속에서도 저토록 평안한 모습을 유 지할 수 있을까? 그녀를 대하면서 신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의 모습은 확연히 다른 데가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목이라도 제대로 가눌 수 있는 형편이라면 그림 그리기가 훨씬 수월할텐데... 몸을 고정시킬 수가 없어서..." 그녀는 그림을 보여 주기도 전에 남편이 그림 그리기에 여러 가지로 조건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거듭 설명하고 있 었다.
그림에 대해 너무 큰 기대를 걸지 말아 달라는 말을 하 고 싶은 것이리라. 실제로 그녀의 남편이 그림을 그린다는 것 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두 말할 나위 없고 몸의 중심조차 잘 안 잡혀 휠체어를 탈 때도 몸이 앞으로 쏠려 언제나 끈으로 고정을 시켜 주어야만 했다. 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두 부부가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생각하니 그림을 선뜻 받아들기가 미안스러웠다.
화실까지 가 는 일만 해도 그들에겐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육중한 몸을 침대에서 일으켜 휠체어에 태워야 했을 것이고, 엘리베 이터를 타고 아파트를 내려온 후에도 차에 타기 위해 몇 사람 이 동원되어야 했을 것이다. 아내는 무거운 휠체어를 들어 트 렁크에 싣고 손수 운전을 해야 했을 것이고, 화실 앞에 와서 도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 힘들게 차에서 내려 다시 휠체어 에 앉혀야 하는 고통이 있었을 것이 뻔했다. 이런 번거로움은 그림을 그릴 때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아내는 남편의 손목에 큰 붓 작은 붓 등 온갖 붓들을 묶어 주 어야 했을 것이고, 이 색 저 색 물감을 짜 주고, 이런 저런 잔 심부름에다, 시간 맞추어 대소변 받아 내는 시중 들기 등 하 루 종일 옆에서 도와주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작업을 끝 내고 다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서 침대에 눕기까지의 과 정들을, 이들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여러 날, 여러 달, 여러 해 동안 함께해 오고 있는 것이다. 이 그림도 이들 부부의 투쟁 같은 노고가 빚어낸 산물이었 다.
그림의 내용이야 어떠하든 나는 그들이 그림을 그렸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탄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겸손하게 별것 아니라고 해고 그의 그림이 수준 이상인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지난 여름, 병원의 연례 행사인 [척수 손상 장애인의 날]이 었다. 우리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퇴원한 환자들의 행사일 인 이날에 환자들이 그린 그림이나 붓글씨 등의 전시회가 함 께 열렸다. 여기에 출품된 작품들은 모두 장애인들의 것이라 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만큼 대단했다.
그런데 그 작품들 가운데서도 유난히 내 마음을 붙들었던 작품이 바로 그의 그 림이었다. 그의 그림들은 주로 사람들을 소재로 한 인물화였는데, 그 림에 표현된 사람들의 모습에는 한결 같이 부드럽고 밝으면서 도 성스럽고 거룩한 신비가 어려 있었다. 그 날 나는 그의 그 림 앞에서 발을 떼지 못한 채 오래도록 서 있었다. 그러다가 불쑥 그림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그의 그림을 병원 복도에 걸어두면 환자들의 찡그린 얼굴들이 저절로 펴질 것 같아 한 점 사고 싶어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의 그림들은 이미 받을 사람들이 정해져 있었고, 그는 이 점을 미안해하면 나 중에 시간을 내어 따로 한점 그려 주겠노라 약속을 했었다. 훗날 따로 그려 주겠다고는 했으나 그 말을 그저 인사 치레로 만 여긴 나로서는 안타까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반 년이 지나 그들은 그때의 약속을 지켰다.
아니 그 여름 그 날 이후로 그 약속은 이미 지켜지고 있었고 오늘에 와서 완성이 되었다는 말이 적절할 것이다. "남편은 전도사님이 자기 그림을 무척 좋아하시는 것 같다면서 얼마나 기뻐했는지 몰라요. 하루라도 빨리 완성해서 드리려고 애를 썼지만 몸이 말을 안 들어 생각보다 오래 걸렸어요." 기대치 않았던 선물이어서 더없이 고마운 쪽은 나인데도 그녀는 약속이 늦어져서 미안하다며 연신 사과를 했다. 장애가 없는 사람들은 공치사나 인사 치레로 함부로 말하고 서로들 잊어버리는 경우가 잦은 데 비해, 장애를 입은 사람들은 주고받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새겨 두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아픈 이들 앞에서는 책임 못질 말이나 쓸데없는 인사 치레를 삼가야 하는 것이다. "전도사님 아무 부담 느끼지 마시고 받아 주세요. 이 그림은 팔지 않고 그냥 선물로 드리는 거예요." 사실 가격을 물어 보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알아서 드리자니 어느 정도가 적정선인지도 모르겠고 하여 내심 걱정하고 있었는데, 이런 나의 마음을 알고나 있는 듯 부담 없이 그냥 받아 달라고 한다. 하지만 도저히 그냥은 받을 수가 없어서 물감값이라도 주고 싶다고 했더니 완강히 거절하면서 그냥 선물이니 맘 편히 받으라고 했다. "남편은 늘 남에게 뭔가를 주고 싶어했어요. 항상 도움을 받고 살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미안스러워 자기도 남을 위해서 뭔가 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림을 그리면서 그 소원이 이루어진 거예요. 남편은 늘 선물을 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그이의 그림에 가족 그림이 많은 것도 그 떄문이에요. 받을 사람의 가족을 대상으로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많거든요. 누군가를 위해 뭔가를 줄 수 있다는 그 즐거움 때문에 힘들지만 그림을 그리는 것 같아요." 아! 그래서 그의 그림에 그렇게 따뜻한 정감이 흘러넘쳤구나. "한때는 살아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며 절망했었는데, 평생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서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 정말이지 남편이 이렇게 그림을 그려 사람들에게 선물할 수 있게 될 줄 몰랐어요." 그녀는 남편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고 몇 번이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아무 부담 없이 그림을 받아 달라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남을 위해서 뭔가를 해주고 싶어하는 그의 마음을 미리 아시고 그에게 그림 그리는 달란트를 주셨나 보다. 사실 나는 그녀의 남편이 그림을 그리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를 못했다. '91년에 우리 병원에 입원해 있었을 때 그는 어느 환자보다도 심한 중증 장애를 안고 있었다.' 89년에 수영 사고로 목을 다쳐 경수에 손상을 입는 바람에 목 아래쪽이 모두 마비가 돼 버려 손도 발도 움직일 수 없게 된 것이다. 게다가 몸의 중심마저도 잡을 수가 없어 휠체어에 앉아 몸을 고정시키기 위해서는 끈으로 몸통을 묶어야 했다.
그런 몸으로 뭔가 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 무리라는 생각은 나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이렇게 화가가 되었고 큰 대회에서 입상을 할 만큼 알려지기도 했다. 그는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다. 장애를 입기 전에 미술을 전공했던 것도 아니었고 가까운 친척 중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 이름난 화가를 그에게 연결시켜 주어 이제는 다름 장애인들에게 그림을 지도할 수 있을 만큼 실력도 다져졌다. 특별히 [수레바퀴 선교회]에 그림 동아리를 만들어 많은 장애인들에게 소망을 주는 사람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폐인이 될 줄로 알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새로운 사람으로 재창조해 주셨다. 건네준 그림을 펼치자 화폭 위엔 예상했던 대로 정다움이 담뿍 담긴 어느 가족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가족들 머리 위로 녹색과 황토 빛이 어우러져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는 하늘이 크게 펼쳐져 있었다. 하늘 한편에는 모서리가 둥글게 다듬어진 세 점의 구름이 한가로이 떠 있었다. 밝은 하늘색 구름이 가장 크게 윗부분에 떠 있고 그 아래로는 저만치 청자 빛과 회색 빛의 좀 짙은 구름 두 개가 겹쳐서 떠오르고 있었다. 널찍한 하늘이 주는 평화로움은 신비에 가까웠다. 그림에 등장한 사람은 모두 세 사람이었다. 흰 너울을 쓴 채 눈을 감고 입을 다문 여인과, 그 여인의 가슴에 포근히 머리를 기댄 채 눈을 지긋이 감고 있는 사내아이와 여자아이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평화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가장(家長)이 없는 가정이지만 조용하면서도 침착하게 고통과 슬픔의 시절을 다 이겨낸 그런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남편이 전도사님 책을 읽고 그린 그림이래요. 잘 표현됬는지 모르겠네요. 지금은 아이들도 많이 컸겠지만 전도사님 부군(夫君) 되시는 분이 소천하셨을 당시를 생각하고 그린 것 같아요. 그 힘든 날들을 잘 이겨 오신 모습을 나름대로 표현 한다고 머리에 흰 너울을 씌웠대요. 아이들까지도 ''', 그리고 전도사님 머리 위에 앉아 있는 까치는 성령을 표현한 거예요. 성령께서 전도사님 가족들을 이끌어 주셨다는 것에 대한 감사를 나타낸 거죠. 남편과 저는 이 그림을 그리면서 전도사님과 전도사님의 두 남매를 위해서 기도했어요." 그녀는 또다시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나는 너무 감격스러워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절망과 좌절 가운데 있던 한 환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살아야겠다는 의욕을 갖게 된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인데, 이제는 장애를 극복하고 화가가 된 모습으로 병원 전도사인 나를 잊지 않고 찾아주다니! 그것도 나를 위해 오랜 날을 수고하며 그림을 그리고 또 우리 가족을 위해 기도해 왔다니 ''' , 나는 뜨거운 것이 목구멍에서 올라 오며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자꾸만 침을 삼켰다. 병원 전도사라고는 하지만 환자들을 제대로 돌보지도 못하고, 관심 가지고 하나하나 기도해 주지도 못하고 살았는데 ''', 그들을 사랑하기보다 그들에게 오히려 사랑을 받고 있구나 생각하니 장애인은 그들이 아니라 바로 나란 생각이 들었다. 몸은 멀쩡할지 몰라도, 마음은 이기적이고 주는 데 인색한 내가 바로 장애인이 아닌가. 나는 받은 그림을 감히 집에 가져갈 수가 없어서 병원에 걸어두었다. 오고가는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쳐다보면서 장애인도 저런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을 알도록, 그래서 몸은 장애를 입어도 마음은 건강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탁용준 화가의 그림은 앞으로 여러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소망과 위로로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다.

김복남 수필집 '사랑은 늘 아름답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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