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처럼, 솟대처럼, 소망을 둔다.

                                                                                                                 황혜경(탁용준의 아내)

“융아~ 융아~ 빨리 일어나 빨리! 벌써 일곱시 반이야. 얼른 세수하고 밥먹어. 엄마 오늘 합창단 가는 날이야.”
우리 집 아침풍경이다. 아직 침대에 누워있는 남편은 아침마다 들어주기 괴로운 소리일게다. 오늘도 아들에게 여유로운 엄마가 되지 못했다.
내가 이렇게 조바심을 내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아들 학교 보내고 그 다음 남편을 챙겨야 한다. 남편이 외출하기까지는 나의 손과 발이 쉴새없이 움직여서 한 시간 반정도 걸린다. 남편이 전동 휠체어를 타고 외출을 해야만 나에게도 비로소 외출이 허용된다.
오늘도 남편은 수레바퀴선교회로 출근(?)을 했다. 엘리베이터 1층 버튼을 누른 뒤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기도 전에 “잘 갔다와”하곤 후다닥 집안으로 들어왔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만이라도 기분 좋게 눈웃음치며 “잘 다녀와요”라고 했으면 좋았을걸... 고깟 1분도 안 걸리는 시간을 할애하지 못했다. 후회를 해본다. 하지만 후회도 잠깐 뿐, 부리나케 몸치장을 하며 자꾸 시계를 올려다본다. “아휴~ 오늘도 늦었네.” 
내가 ‘소망합창단’에 입단한지도 벌써 10년이 되어간다. 남편이 붓을 든 시기도 이와 비슷하다. 남편은 그림을 그린 지 10년 만에 지난 5월에 개인전을 열었다. 10년 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한 장애인에서 이젠 어엿한 화가로 제2의 인생을 열게 된 것이다.
10년 전, 우리는 다락방 집사님들과 함께 기도했다.
“하나님, 용준 씨에게도 할 수 있는 일을 주세요”라고 나는 기도하면서 ‘손가락도 하나도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하며 의심을 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나의 의심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손에 아대를 끼워주고 그 속에 붓을 끼운 다음 팔레트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그 위에 물감을 짜주면 부자유스러운 팔로 남편은 자신의 마음을 캔버스 위에 옮겨 놓는다.
남편은 동심의 세계를 잘 그린다. 그리고 가족과 사랑을 주제로 한 그림이 많다. 요즘엔 솟대와 허수아비로 자화상을 표현한다. 비록 몸은 고정되어 있지만 밤하늘에 별을 쳐다보며 자유를 꿈꾸고 있는 허수아비처럼, 신성한 곳을 향해 머리를 돌린 솟대처럼, 자신 역시 휠체어에 몸이 고정되어 있을지라도 붓터치에서 자유를 누리며 고통도 없고 괴로움도 없는 영원한 안식처를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있음을 자신있게 표현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남편에게는 내게서 찾기 힘든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남편이 12년 전 사고를 당할 당시 내 뱃속에 있던 아이가 벌써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다. 지난번 학기 초 학교에서 가정 환경조사서를 보내왔다. 아빠 직업란에 화가라고 써주었다. 요즘엔 직업을 가진 엄마들도 많이 있기 때문에 엄마 직업란도 기입하게 되어 있었다. 그냥 공란으로 비워두었더니 우리 아이가 “엄마도 직업 있잖아요”하는 것이었다. “엄마가 무슨 직업이 있어. 주부지...”했더니 아이는 “엄마 합창단이 직장 아니에요?”하는 것이다.
10년 동안 한결같이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을 나가니 아이에게는 그럴만도 할 것이다. 갑자기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10년을 하나님 찬양하러 다닌 사람의 모습이 이 정도라니...”.
남편도 찬양 그림을 잘 그린다. 남편의 찬양 그림을 보면 정말 천사가 찬양하는 것 같은데 내 모습은 천사의 모습은커녕 여유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타락 천사로 전락되어 버린 것 같았다.
오늘도 씽크대 유리에 붙어있는 “꽃 피우는 부부”라는 시가 나의 시선을 머무르게 한다.
“당신과 함께 아침을 맞고 햇살 가득한 창 사이로 들어오는 하늘 앞에 아직은 눈뜨지 않았어도 곁에 잠든 당신, 그 편안한 얼굴에 난 아내라는 자리가 참으로 행복합니다”.
나에게도 이런 여유로움 묻어나는 날이 오겠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