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후배의 이야기

YMCA명예총무로 널리 알려진 오리 전택부 선생님께서 하루는 아내를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낸 친구를 위로하러 친구 집에 방문했는데 오리 선생을 방으로 모시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이 상배를 당한 친구가 심각하게 하는 말이 “여보게 오리, 내가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나와 같이 그 동안 살다가 하늘로 간 사람이 사람이 아니었어, 내 못된 성질 다 받아주고 하늘나라를 같이 소망하게 하며, 그동안 지내온 것을 돌이켜 보니 사람이 아니고 천사란 말이야 천사!...하나님이 내 인생을 보살펴주기 위해서 천사를 보내신 것을 왜 이제야 깨닫게 됐는지...”.
물론 오리선생의 친구 분 역시 신실하신 장로님이시고 삶의 모범을 보이며 살아오셨지만 지나온 모든 삶을 돌아보면 우리의 인생에서 하나님이 관여하시고 계획됨이 아니 된 것이 없음을 이 두 분의 대화를 통해 알게되었다.
나에겐 H라는 심한 경추장애인 그림쟁이 후배가 한 명 있다. 그 형제가 교통사고로 다친 후 보상도 받지 못하고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가 그를 특별히 도울 수 없는 것에 나는 늘 가슴 아파 왔고 내가 그 후배에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그림을 포기하지 말라는 공허한 이야기뿐 이였다.
H가 살고있는 곳은 강원도 산골동네이기 때문에, 그는 그 곳에서 물감과 화구 구하는 것이 무척이나 어렵다고 했다. 읍내에 나가야 문방구가 있는데 그곳에서는 원하는 물감을 구하기 힘들고 제일 가까운 도시인 춘천까지 나가야 본인이 찾는 물감을 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나마 같은 동네에 살던 매형이 도와주었는데 직장관계로 다른 곳으로 전근을 가서 더욱 힘들어졌다고 해서 나는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생겼구나’라고 물감이나 간단한 것을 구해서 보내주기로 H와 약속을 했다.
그러던 중 1월에 모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초대전에 같이 참여를 하게 되었다. 그 전시회에서 다행히도 H의 그림이 판매가 되었다.
H는 조심스럽게 그림 값이 언제쯤 오는가를 나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예전 경험을 비추어 한 3개월 지나야 그림대금이 온다고 하자 H는 한숨을 쉬며 “필요한 것이 많고 지금 긴박하게 쓰일 돈이 있는데...”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나는 무심결에 어떤 일이 그렇게 힘드냐고 상투적으로 물으니, 어머니와 지금 한시적 생활보호대상자로 등록이 되어 소액의 보조금으로 살아간다며 지금 보일러 기름이 떨어진 지 몇 일 되었다는 낙심하는 모습이 전화기를 통해 전해왔다. 그러면서 ‘수중에 6만원이 있는데 물감 중에 급하게 필요한 것이 있으니 구해서 보내줄 수 있느냐’고 나에게 부탁을 하였다. 나는 흔쾌히 대답을 하였다.
화방에서 H가 원하는 것을 준비한 후 보내자 며칠 후 잘 받았다는 연락과 함께 나는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감 값을 형이 먼저 계산을 했느냐’고 물으며,’그림 판 돈이 나올 곳이 확실하니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은 우선 기름 값으로 쓰고 그때 나오면 주면 안될까‘라고 계면쩍게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내가 그 동안 H에게 너무 무심하지 않았나‘생각하고 ‘그 정도 여유는 나에게 있으니 걱정말고 나중에 보내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내 그림 작업을 도와주는 한 봉사자 자매님께서 나를 도와주고 있는 중에 H에게 전화가 왔고 그 자매님께서 전화기를 잡지 못하는 나에게 전화기를 귀에다 대주며 H와 나와의 대화를 대충 듣고 감을 잡으셨다. 그리고 나에게 자세한 것을 물어 보았다. 나는 편한 상태로 H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자 그 자매님은 갑자기 활짝 웃으시며 “형제님, 아까 저한테 조금 힘들어 보인다고 하셨죠. 사실은 일주일동안 금식을 하기로 정했었어요. 1년에 한 두 번씩 이렇게 금식을 정하고 금식한 날만큼 식대를 계산하여 그것을 어려운 사람에게 주고 있는 형제님이 H라는 형제와 전화로 대화하는 것을 듣고 이번 금식계획이 이곳에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H에게 대강 상황을 전해주자 H는 목이 메인 듯이 고맙다는 말만 계속했다.
짧은 삶이지만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보면 나 역시 모든 일이 내 마음대로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살핌 속에서 산 것이라고 고백한다. 모든 문제를 주님 앞에 내려놓고 기도와 간구로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둔하게 인간적으로 머리를 굴리고 그림을 시작하였지만 모든 것이 내 중심적인 생각이었다고 반성해 본다.
지금 나의 환경도 어려운 상황이지만 몸이 불편한 상태에서 그림 작업을 하는 척수장애인 모두가 이 땅에 살면서 이 세상을 원망치 않고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흰 화폭에서 자유로움을 누리다가 천국에서 만나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목록보기